✦ 위치 : 서학예술마을 내
✦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3길 85
✦ 연락처 : 063-288-1267
✦ 개장 : 오전 11시 ~ 오후 6시
✦ 휴관 : 매 월요일
✦ 촬영 : 전시장 내 촬영금지
✦ 애완견 : 전시장 내 출입금지
✦ 관람료 : 무료

관장 이희춘 화백

 

 

이희춘 화백은 전주 태생으로 원광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미국, 홍콩 등지에서 국제전을 비롯해 서울, 전주 등 국내 20여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베이징예술박람회, 중국 션전 수묵비엔날레, 뉴욕 아트엑스포, 한국 국제아트페어, 뉴욕 코리안아트쇼, ART.Fair21(독일 쾰른), AAF Singapore(싱가폴), KIAF, 아트광주, Doors 아트페어 등의 비엔날레 및 국제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중국로신미술대학, 캐나다 퀘백대학교 뉴욕 IBM, 우리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전북도청사, 원광대학교 미술관 메르세데스-벤츠전주전시장 등에 작품이 소장 돼 있다.

‘몽유화원도’…꿈과 환상의 유토피아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아름다운 꽃밭을 노닐다

동양사상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창작의 근원으로 삼아,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이희춘 화백. 그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 즉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세계를 화폭에 담는다. 이는 물질만능주의의 각박한 사회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기정신을 담고 있는 것. 순수한 감성으로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신비로운 예술세계를 펼치는 이희춘 화백을 만나 고결한 자연을 닮은 그의 예술인생을 주목해 보았다.

‘몽유화원도’…무위자연의 미학을 담다

예향의 도시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자리한 이희춘 화백의 아틀리에(atelier)를 찾았다. 작업실 겸 게스트하우스 ‘몽유화원’이 아늑하게 꾸며진 그곳은, 작가의 혼이 서린 몽유화원도가 벽면 가득 채워져 있어, 마치 꿈의 세계에 초대받은 듯 설렘이 느껴졌다.
“‘몽유화원도’는 꿈과 현실의 접경에서 나비로 발현되는 장자만의 이상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 입니다. 아픈 세상사의 일들을 다 잊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무위자연의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몽유화원도’에 천착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자연으로 돌아가 무위로 사는 것만이 인간 현실을 구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자연주의에 뿌리를 둔 노자정신에 매료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화백은 “뭔가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는 노자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붓에 맡겨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생각이 거짓 없이 녹아들어 있는 예술, 그것이 무심과 무위를 주창한 노자의 철리(哲理)와 같다.

무지갯빛 화려한 자개농에 매료되어

“지난 2008년, 수묵작품으로 뉴욕아트페어에 참여했는데, 기대만큼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상치 못한 반응에 큰 충격을 받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죠. 그간 고집해온 지필묵에서 벗어나 유화물감으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작품 구상에 골몰했습니다.”
운명이었을까. 몇 년째 보았던 처갓집 안방에 놓인 자개농이, 그날따라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옻칠 위 얇게 저민 조개껍데기가 한 폭의 화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검은 바탕에 빛을 받으며 목단꽃을 피워내는 화원에, 송학이 날고 공작이 춤을 추고 있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십장생과 공작이 상서롭게 방안을 지키고 있는 모습에, 그는 46년 전의 아련한 옛 추억들과 오버랩(overlap)되면서 가슴이 뜨겁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유유히 흐르는 전주 천변 제방 밑 동네, 300여평의 넓은 대지 한 가운데 자리한 마당이 있는 한옥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죠. 집안에는 피난민들과 함께 12가구가 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자개농 공방을 했습니다. 어느 날 작업하는 모습을 가까이 보니, 찬합들을 열심히 만들고 있더군요. 옻칠을 하고,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 붙이는 과정들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당시 또래와 어울려 놀지도 않고, 자개농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제 유일한 취미었지요.”
이 화백에게 자개농은 단순한 고가구의 문양이 아닌, 평화롭고 따뜻한 고향의 정취, 꿈과 환상의 유토피아로 다가왔다. 가슴 속 전율이 감돌았다. 드디어 작업의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 화백은 캔버스에 자개농을 옮겨 그리듯, 그만의 상상 속 이상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몽유화원도는 오방색을 바탕으로 하며, 오일컬러에 대리석 돌가루를 혼합해서 나이프로 미는 작업을 합니다. 나이프가 지나간 자리에는 꽃들이 피어오르고, 꽃나비들이 춤을 춥니다. 관람객들은 대부분 몽유화원도를 마주하면 꼭 한 번씩 만져보곤 하시는데, 꽃과 나비의 형상이 마치 오려 붙인 듯 신기하다면서 독특함에 감탄하곤 하십니다.”
그의 화면은 질료의 생생함과 행위의 자유로움이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유화 안료의 진득한 맛과 나전의 느낌을 주는 터치, 그리고 입체감이 도드라지는 독특한 작업기법이 작품의 개성을 선명하게 한다. 또한,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며, 은은한 색감이 유화로 그리는 한국화의 독특한 멋을 풍긴다. 미술평론가 김선태는 “작가 이희춘이 시도하는 무위자연은 타고난 그대로 꾸밈이 없는 상태로서, 천연의 모습이 자연에 합일되는 것이다. 그가 시도하는 무위자연의 미학은 결코 기법의 수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맑은 인품과 꿋꿋한 삶 속에서 터득한 외적인 기법과 내적인 철학이 합일된 하나의 결과물이다”라며 그의 예술세계를 평한 바 있다.

수고로운 삶에 대한 위로의 손길

몽유화원도는 삶의 포용력과 인간적인 따스함이 묻어난다. 인간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진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찬미가 자연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과, 나비들의 희망의 날갯짓, 새들의 속삭임이 어우러져 인간 본연의 심성을 환기시킨다. 지상에서의 수고로운 삶을 위로하는 그의 작업은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다. 꿈 곧 상상력은 주된 예술적 동인(動因)으로 작용하지만, 그의 꿈은 깊은 사색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상에 있는 산이나 들, 나무, 꽃, 새의 형태를 빌어 자신의 사의(寫意)세계를 나타낸다. 그러면서 다른 형태로의 변형을 시도한다. 현실의 생활상으로 인해 빚어지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표현한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작가의 정신이 함축돼 있다.

마음 속 빈자리를 그림으로 채우다

이렇듯, 독특한 화풍으로 현대미학의 지평을 여는 이희춘 화백. 그의 예술적 소질은 타고난 것일까. 그는 무엇보다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건축업을 하셨기에, 집안에는 설계도가 쌓여 있곤 했습니다. 저는 도면의 기호들을 보고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겨했었죠.”
중학교 때부터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그림의 소질을 키워나갔지만 고교진학을 앞두고, 부친의 사업이 도산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한 순간에 풍비박산된 가정에서 그는 장남이라는 책임감으로 버텨야만 했다고. 이후 고교 2학년 때 울타리였던 아버지마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던 이 화백.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누나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그는 부친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사회 첫 발을 내딛었던 그에게 사회는 녹록치 않았다.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빠듯한 수입으로 목을 죄는 듯한 은행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고민 끝에 사표를 던진 그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원광대 미대를 진학했다.
대학진학 후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 학과 교수와 나란히 국전에서 입선을 했던 것. 1학년이 수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어 3, 4학년 때 중앙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연이어 수상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 졸업 후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또 다른 위기가 그에게 찾아온다.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돼 잠시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 아픔을 딛고, 결혼을 한 후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건축업에 몸담았다. 일을 하면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작품 활동을 왕성히 하면서 대학원을 진학해 석,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지금껏 중국, 미국, 홍콩 등지에서의 국제전을 비롯해 서울, 전주 등 국내에서 20여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무위자연의 미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인간의 행복, 이상세계는 마음속에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생(生) 가운데, 늘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 화백. 그는 많은 아픔을 겪었기에, 이제는 훌훌 털고 미술에 심취해 놀이 하듯 즐기며 화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 이상세계, 유토피아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꿈꾸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다. 그 꿈은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더 살아갈 명분을 주고, 힘이 되며 행복의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이 화백의 몽유화원도가 가슴 속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우리가 잠시 잊었던 이상향에 대한 꿈 그리고 행복을 부르는 주문을 다시 들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인성, 끝없는 노력, 변화를 추구하는 실험성

“작가는 좋은 인성과 노력, 변화를 추구하는 실험성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며, 나만의 독특한 색이 담긴 작품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이 화백은 향후 키아프 전시와 홍콩 및 싱가폴아트페어를 계획 중에 있다. 이어 그는 “지난해 키아프 전시 중 프랑스 파리의 중년 여성 2명이 나를 찾아왔다. 독특한 작업을 하는 동양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왔다고 하더라. 작품을 보고 호평을 하며, 프랑스 국립미술관 전시를 권유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중 한명은 프랑스현대미술협회의 최고 수장이었다. 갑작스러웠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문화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내년 하반기에 프랑스 국립미술관 전시를 진행할 것”이라며 향후 전시계획을 밝혔다.
매혹적인 작품으로 관람자를 한 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이자, 메마른 가슴을 포근히 감싸주는 위로와 격려의 손길과도 같았다. “각박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쉼표가 될 수 있는 안식처 같은 작가이고 싶다”는 그가 앞으로도 소신을 지키며, 진정성 있는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정혜미 기자 <피플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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