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에서 나이가 멈춘 한 남자는 붓 대신에 바늘을 들고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려 주목을 받았다. 십년이 흐른 뒤에는 버려졌던 낡은 공간을 개조해 작업실과 전시장, 음악 감상, 핸드드립 커피까지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바꾸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바느질하는 남자’ 이경태(53)씨가 반세기를 함께 동고동락한 이름 대신 ‘이적요’라는 새 이름을 갖고 나타났다. 그가 최근 전주시 서학동에 마련한 오픈 아뜰리에(Open Atelier) ‘적요 숨쉬다’는 그를 알고, 미술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기는 모든 이들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적막할 적(寂)과 고요할 요(窈)자를 향후 살게 될 세월의 바탕에 두고 싶다는 작가. 오직 현재만을 생각하고, 고르고 정직한 호흡만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과거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미치도록 경계하는 작가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새 공간을 품에 안은 것 또한 새 이름을 지은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장장 6개월여의 시간을 들여 공들인 ‘적요 숨쉬다’. 그는 이 공간이 작가 자신만을 위한 곳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의 그림을 알고 싶고, 작업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럽여행에서 만난 그리스 어느 도시의 한 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의 공간은 그로테스크하다. 내벽은 하얀 벽돌로 깨끗하게 꾸며져 있는데다 형형색색의 꽃과 몽환적인 꿈, 자화상 등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곳곳에 걸려있다.
문짝이나 서랍장 등 폐품을 이용한 ‘아상블라쥬’ 작업을 통해 버려진 것들에 새로운 옷을 입혀 생명을 불어 넣는 그의 작업방식 또한 공간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래된 석쇠에 끼워든 흑백사진 한 장, 추억을 싣고 있는 LP판과 턴테이블, 난로, 욕실 앞 발수건 등 소품 하나하나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픈된 화실에서는 이씨의 작업 전반에 관한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림 따로, 사람 따로가 아닌 하나의 모습을 가식 없이 보여주고 싶다는 작가.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그의 모든 것을 미리 엿볼 수 있음은 물론, 솔직한 작가의 입담은 덤이다. 제3세계 음악과 희귀음반 등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귀한 음악자료들은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는 양식이 될 터다 .
이씨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몸과 정신을 닦아 놓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만 잘 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만 잘하면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니기에 다방면에 욕심을 내고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공간에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들고 교류하다 보면 한층 더 유쾌하고 펑키해진 작품을 내년쯤에는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와 함께 그는 지난 25일부터 8월 6일까지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갤러리 ‘소금항아리’에서 초대전도 열고 있다.
스물 세 번째 개인전으로, ‘이적요’라는 이름으로는 첫 번째 전시인 것. 화폭에 물감을 입히는 것 뿐 아니라 그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바로 바느질. 그가 붓과 함께 실과 바늘을 잡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정성스런 바느질, 그 그리움에 있다. 막무가내로 하는 바느질이라지만, 독특한 화면구성과 문자의 조합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김미진기자 전북도민일보 2011년 7월 28일 작성